윤성덕 교수(연세대 기독교 문화 연구소 연구 교수,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
서아시아 첫 제국 앗슈르, 변방 부족 통제에 애먹어
美 강압적 정책 ‘쓰나미’, 협상으로 돌파구 찾아야
일정한 영토와 거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을 ‘나라’ 또는 ‘국가’(표준국어대사전)라고 부른다면, 국경선을 넘어 서서 좀 더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사회 집단을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특히 경제면에서 생산과 유통 체계를 지배하고 이런 관계를 정치나 군사력으로 확립한 주체가 나타났을 때 ‘제국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럼 우리는 제국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가?
고대 서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국을 세운 집단으로 앗슈르
사람들을 꼽을 수 있는데, 후대 서양 사가들은 이 제국을 앗씨리아(Assyria)라고 불렀다. 이들은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초가 되면 현대 이란 서부에서 이라크와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까지 다스리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다.그런데 제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쉽게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지역이 존재했다. 너무 험한 산 속에 사는 민족들이나 광활한 사막에 사는 부족들이 그러했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 반도에는 케다르(Qedar) 족이나 싸바(Saba’ 또는 Sheba) 족이 살고 있었는데, 앗슈르 제국은 평화로운 시기에 이들을 통해 낙타나 당나귀 같은 가축들은 물론 값비싼 보석과 장식용 목재와 향신료들을 구하여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막 부족들은 잘 조직된 국가로 앗슈르와 관계를 맺었던 것이 아니라 소규모 부족국가나 상단으로 활동했고, 제국 정부는 책임 있는 협상 대표자를 만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부족 연맹체의 대표와 조약을 맺고 무역을 시작해도 다른 부족들이 앗슈르 변방 도시를 공격하거나 앗슈르 상인들을 덮쳐서 강도질을 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앗슈르 제국의 위엄이 절정에 달했던 기원전 7세기 초에 앗슈르 왕은 아둠마투(Adummatu) 오아시스 등 사막 부족들의 거주지를 공격하며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왕은 이런 방법으로 사막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아라비아 거주민 중 우호적인 인물을 꼭두각시 왕으로 임명하고 그들이 바치는 조공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랍 부족들의 반란은 끊이지 않았고 재점령과 새 지도자 임명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제국의 국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앗슈르 왕 샤루키누(
영어로 Sargon)는 제국 전체에 명령해 아라비아 반도에 사는 부족들에게 철광석을 팔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이 부족들이 철로 만든 무기를 보유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앗슈르 제국은 기원전 7세기 말에 멸망하는데, 제국의 수도를 무너뜨린 주도 세력은 바빌리(
영어로 Babylonia)와 마다이(Madai, 영어로 Medes) 연합군이었지만 그들 측에 아랍 부족들도 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제국 정부와 피지배국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매우 많고 복잡한 인류 문명의 다양한 영역들은 물론 기후 변화나 전염병도 변수가 되기 때문에 쉽게 다룰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제국 왕이 주변지역에 사는 약소국을 쉽게 통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 특히 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 중국 러시아와 같은 거대한 세력들의 움직임과 그 지도자들의 행적이 빠지지 않고 아침 신문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앗슈르 제국 정부가 아랍 부족들을 지배하지 못한 것은 적절한 우선 순위에 따라 실현 가능한 정책목표를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앗슈르 제국이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제한적인 통신과 교통 관련 기술을 사용해 확장할 수 있는 제국 통치체제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사실을 현대 상황에 적용하자면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대결을 하면서 주변국들과 관세 전쟁을 벌이고 그린란드와 파나마와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를 동시에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강대국 정부가 요구하는 부담을 일정 기간 감내해야 할테지만 이런 정책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결국 제국 정부도 피지배국이 망하지 않고 생존해 자신에게 경제적 정치적 힘을 실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재화와 인력이 필요한 강대국 정부는 피지배국의 협력이 없으면 자신이 원하는 세계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협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약서의 마지막 문구까지 매달린다면 분명히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25. 03. 19
출처:(https://www.kookjae.co.kr/news2011/asp/?code=1700&key=20250320.22023005248)
윤성덕 교수(연세대 기독교 문화 연구소 연구 교수,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
서아시아 첫 제국 앗슈르, 변방 부족 통제에 애먹어
美 강압적 정책 ‘쓰나미’, 협상으로 돌파구 찾아야
일정한 영토와 거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을 ‘나라’ 또는 ‘국가’(표준국어대사전)라고 부른다면, 국경선을 넘어 서서 좀 더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사회 집단을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특히 경제면에서 생산과 유통 체계를 지배하고 이런 관계를 정치나 군사력으로 확립한 주체가 나타났을 때 ‘제국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럼 우리는 제국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가?
고대 서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국을 세운 집단으로 앗슈르
사람들을 꼽을 수 있는데, 후대 서양 사가들은 이 제국을 앗씨리아(Assyria)라고 불렀다. 이들은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초가 되면 현대 이란 서부에서 이라크와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까지 다스리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다.그런데 제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쉽게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지역이 존재했다. 너무 험한 산 속에 사는 민족들이나 광활한 사막에 사는 부족들이 그러했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 반도에는 케다르(Qedar) 족이나 싸바(Saba’ 또는 Sheba) 족이 살고 있었는데, 앗슈르 제국은 평화로운 시기에 이들을 통해 낙타나 당나귀 같은 가축들은 물론 값비싼 보석과 장식용 목재와 향신료들을 구하여 누릴 수 있었다.
영어로 Sargon)는 제국 전체에 명령해 아라비아 반도에 사는 부족들에게 철광석을 팔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이 부족들이 철로 만든 무기를 보유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앗슈르 제국은 기원전 7세기 말에 멸망하는데, 제국의 수도를 무너뜨린 주도 세력은 바빌리(
영어로 Babylonia)와 마다이(Madai, 영어로 Medes) 연합군이었지만 그들 측에 아랍 부족들도 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제국 정부와 피지배국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매우 많고 복잡한 인류 문명의 다양한 영역들은 물론 기후 변화나 전염병도 변수가 되기 때문에 쉽게 다룰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제국 왕이 주변지역에 사는 약소국을 쉽게 통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 특히 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 중국 러시아와 같은 거대한 세력들의 움직임과 그 지도자들의 행적이 빠지지 않고 아침 신문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막 부족들은 잘 조직된 국가로 앗슈르와 관계를 맺었던 것이 아니라 소규모 부족국가나 상단으로 활동했고, 제국 정부는 책임 있는 협상 대표자를 만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부족 연맹체의 대표와 조약을 맺고 무역을 시작해도 다른 부족들이 앗슈르 변방 도시를 공격하거나 앗슈르 상인들을 덮쳐서 강도질을 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앗슈르 제국의 위엄이 절정에 달했던 기원전 7세기 초에 앗슈르 왕은 아둠마투(Adummatu) 오아시스 등 사막 부족들의 거주지를 공격하며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왕은 이런 방법으로 사막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아라비아 거주민 중 우호적인 인물을 꼭두각시 왕으로 임명하고 그들이 바치는 조공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랍 부족들의 반란은 끊이지 않았고 재점령과 새 지도자 임명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제국의 국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앗슈르 왕 샤루키누(
앗슈르 제국 정부가 아랍 부족들을 지배하지 못한 것은 적절한 우선 순위에 따라 실현 가능한 정책목표를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앗슈르 제국이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제한적인 통신과 교통 관련 기술을 사용해 확장할 수 있는 제국 통치체제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사실을 현대 상황에 적용하자면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대결을 하면서 주변국들과 관세 전쟁을 벌이고 그린란드와 파나마와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를 동시에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강대국 정부가 요구하는 부담을 일정 기간 감내해야 할테지만 이런 정책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결국 제국 정부도 피지배국이 망하지 않고 생존해 자신에게 경제적 정치적 힘을 실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재화와 인력이 필요한 강대국 정부는 피지배국의 협력이 없으면 자신이 원하는 세계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협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약서의 마지막 문구까지 매달린다면 분명히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25. 03. 19
출처:(https://www.kookjae.co.kr/news2011/asp/?code=1700&key=20250320.22023005248)